[친환경 에너지 시리즈 5편]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기술과 인프라
1편: 왜 지금 친환경 에너지로 바꿔야 할까? 화석연료 시대의 끝과 기후 위기의 해답
2편: 태양광과 풍력, 가장 앞선 재생에너지의 현재
3편: 수소와 바이오에너지, 차세대 친환경 에너지의 가능성
태양광과 풍력, 수소와 바이오에너지, 그리고 원자력까지. 지금까지 살펴본 다양한 에너지원이 탄소중립을 향한 중요한 축이라면, 이제는 그 모든 에너지를 뒷받침할 ‘기술과 인프라’가 필요합니다. 태양이 아무리 뜨거워도 밤에는 전기를 만들 수 없고, 바람이 아무리 세게 불어도 그 바람이 멎으면 발전소는 멈춥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밤에 사용하는 전기는 어디서 오는 걸까요? 이번 호기심도서관에서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술적·사회적 기반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
똑똑한 전력망, 스마트그리드
재생에너지의 가장 큰 특징은 변동성입니다. 태양은 매일 떠오르지만 구름이 낄 때는 발전량이 줄고, 바람은 불었다 멎었다를 반복합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기존의 중앙집중식 전력망으로는 한계가 드러납니다. 여기서 등장한 개념이 ‘스마트그리드’입니다. 스마트그리드는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해 전력 수요와 공급을 실시간으로 조율하는 지능형 전력망입니다. 한국은 제주도를 중심으로 스마트그리드 실증단지를 운영하며 기술 축적을 이어가고 있고, 미국과 유럽은 대규모 송전망과 분산형 발전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확장해 나가고 있습니다.
스마트그리드는 단순히 기술적 진보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스마트미터(AMI)입니다. 스마트미터는 단순히 사용량만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과 전력회사가 양방향으로 데이터를 주고받으며 전력 사용을 최적화하는 중요한 말단 장치입니다. 전기차 충전소, 가정용 태양광, 산업체 전력 사용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연결해 ‘에너지 인터넷’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스마트미터(AMI)는 단순히 사용량만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과 전력회사가 양방향으로 데이터를 주고받으며 전력 사용을 최적화하는 중요한 말단 장치입니다. 이는 에너지 자원의 효율적 활용뿐 아니라 사이버 보안, 개인정보 보호 같은 새로운 과제를 동반하기도 합니다.
배터리가 없다면? 전기를 담는 거대한 보물창고, ESS
전력망 혁신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재생에너지가 안정적으로 전력망에 기여하려면 저장기술이 필수적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에너지저장장치(ESS)입니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이미 상용화 단계에 들어섰고, 한국 기업들도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규모 전력망 수준에서는 여전히 높은 비용과 화재 위험이 과제로 꼽힙니다. 특히 2018~2019년 한국에서 발생한 다수의 ESS 화재 사고로 한동안 보급이 주춤했던 사례가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차세대 저장 기술인 전고체 배터리, 레독스플로우 배터리, 압축공기저장(CAES), 수소저장 등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특히 수소저장은 대량의 전기를 장기간 보관할 수 있어 태양광·풍력과의 궁합이 좋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에 따르면 2021년 약 16GW 수준이던 전 세계 ESS 설치 용량은 2030년까지 350GW 이상으로, 17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한국도 2036년까지 전력망용 ESS를 20GW 이상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습니다. 참고로 배터리 가격은 2010년 kWh당 1,100달러에서 2023년 약 140달러 수준까지 떨어졌고, 2030년에는 60달러 이하로 내려갈 것으로 전망됩니다(BloombergNEF). 이는 재생에너지 변동성 문제를 완화하는 핵심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송전 인프라, 전기를 멀리까지
재생에너지는 입지 제약이 크기 때문에 전력이 생산되는 곳과 소비되는 곳이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풍력이 강한 해상이나 사막 지역에서 생산한 전기를 도시로 보내려면 고효율 송전망이 필요합니다. 고압직류송전(HVDC)는 교류 대비 손실률이 1000km당 약 2~3% 수준으로 절반 이하에 불과해 장거리 전송에 유리하며, 나라마다 다른 전력 주파수와 무관하게 전송이 가능한 '주파수 독립적 전송' 기능을 갖추고 있어 국제 연계에 특히 유리합니다., 재생에너지 확산의 핵심 기술로 꼽힙니다. 유럽은 북해 해상풍력 전력을 독일과 프랑스로 보내기 위해 HVDC를 적극 도입하고 있고, 중국은 서부 사막지대 태양광 전력을 동부 대도시로 공급하는 초고압 직류망(UHVDC)을 이미 30여 개 이상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국 역시 신한울·새만금 등 대규모 발전 단지와 수도권을 연결하기 위해 HVDC 도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HVDC는 단순히 장거리 송전뿐 아니라 국가 간 전력망 연계에도 중요합니다. 특히 교류 전력망은 나라마다 주파수가 달라 직접 연결하기 어렵지만, HVDC는 주파수와 무관하게 전송이 가능해 국제 전력망 연계에 필수적입니다. 아시아 슈퍼그리드, 유럽 단일전력시장 구상은 모두 HVDC를 기반으로 합니다. 이는 에너지를 국경을 넘어 교환하는 새로운 시대의 인프라라 할 수 있습니다.
디지털 기술과 수요관리
재생에너지 확대는 단순히 공급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수요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블록체인 같은 디지털 기술은 가정과 기업의 전력 사용을 최적화할 수 있는 수단이 됩니다. 예를 들어, 전기차 충전 시간을 전력 수요가 낮은 시간대로 분산하거나, 가정용 태양광 발전과 연계해 남는 전기를 이웃과 거래하는 방식이 이미 일부 지역에서 실험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프로슈머(Prosumer)’ 모델은 전력 소비자와 생산자의 경계를 허물며, 에너지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기반이 될 수 있습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수요반응(DR, Demand Response)이 2050년까지 세계 전력 피크 수요의 10% 이상을 줄일 수 있다고 전망합니다. 이는 전력망 안정성뿐 아니라 가계와 기업의 에너지 비용 절감에도 기여할 수 있습니다.
국제 협력과 지역 수용성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와 국제적 협력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한국의 경우 전남 신안 해상풍력이나 강원도 태양광 사업처럼 지역 주민 반대가 큰 장애물이 되고 있습니다. 덴마크와 독일은 주민들이 발전 프로젝트에 직접 투자하고 이익을 공유하는 ‘에너지 협동조합’ 모델로 수용성을 확보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덴마크의 미델그룬덴 풍력단지는 인근 주민 8,500여 명이 직접 투자해 전체 지분의 절반을 보유하고 있으며, 운영 수익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전력 생산을 넘어, 지역 경제 활성화와 공동체 신뢰 회복으로 이어졌습니다.
국제적으로도 전력망 연결과 재생에너지 거래 확대를 위한 협력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습니다. 아시아 슈퍼그리드, 유럽 단일전력시장 구상 등이 대표적입니다. 일본, 중국, 한국, 몽골 등이 논의 중인 동북아 슈퍼그리드도 큰 잠재력을 가진 프로젝트로 꼽힙니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단순히 태양광 패널을 더 설치하고 풍력 터빈을 늘리는 일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 뒤에서 전력을 저장하고, 멀리 보내고, 똑똑하게 쓰는 기술과 인프라가 있어야만 지속가능한 전환이 가능합니다. 결국 우리가 만들어갈 미래 에너지 체제는 발전소보다 전력망과 저장장치, 그리고 사회적 합의 위에서 완성될 것입니다. 탄소중립은 기술적 혁신과 제도적 뒷받침, 그리고 시민들의 신뢰가 함께할 때 현실이 됩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다음 편에서는 탄소중립 2050과 우리 삶 속 에너지 전환의 길, 구체적인 정책과 생활 속 실천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